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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변에서 가끔 사람들이 소리소리 지르며 싸우는 현장을 목격 할 때가 있습니다. "야! 너 양심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양심에 털 난 사람 같으니라고" 하면서 소리치는 것을 본다던가, 아니면 "야! 너 양심을 저당 잡혔니? 양심 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 하면서 싸우는 사람들을 종종 볼 때가 있습니다. 양심이 있니 없니? 또는 저당 잡혔니? 털 났니? 하는 말의 뜻은 옳지 못한 염치없는 짓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럼 그들이 말하는 양심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양심이란 도덕적 행위로써 선악에 관계되는 인격적인 의식 또는 심정(心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심은 그 사람이 속해 있는 커뮤니티(Community)의 문화 관습 도덕률과 환경에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은 어떤 공동체내에서 전해 내려오는 관습이나 윤리 도덕 교육 등 학습에 의해서 형성된 일종의 가치관 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심이란 선과 악 바른 것과 그릇된 것을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명령하는 도덕적 자아 주체이기도 한 것입니다.양심은 어두움의 지배를 받는 인간에게 혼을 통해 들어오는 복음의 빛이 맨 먼저 도착하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심 그 자체는 예수를 믿기 전이나 믿은 후나 하나이지만 사람의 따라 악한 양심, 더러운 양심, 청결한 양심, 선한 양심, 화인 맞은 양심, 약한 양심을 소유하게 됩니다.

무고한 사람을 26명이나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 유 ○○처럼 화인 맞은 양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강도 만난 이웃을 돌보아준 사마리아인 처람 선한 양심을 소유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2004년 발생한 부천초등학생 살인 사건과 2006년 3월 발생한 봉천동 세 자매 살인사건에 이르기까지 12건의 상해 살인 사건으로 기소된 정 ○○에 대한 기사 내용입니다. 범행동기와 당시의 심정을 묻는 재판부에 대답하기를 "담배를 피우고 싶은 것처럼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사회에 나가도 계속 살인을 하겠다.

더 이상 살인을 못할까봐 조바심이 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또한 "피해자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든 적은 전혀 없다"며 "내가 죽는 것이 두렵기는 하지만 여러 사람을 죽였으니까 당연히 사형 선고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 한다"라고 담담하게 토로했다고 합니다.


"살아오면서 즐거웠던 적은 없었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진절머리 날 정도로 안 좋은 기억만 있다"고 답한 정씨는 "사람을 죽이고 난 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환희를 느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의사의 진단결과 반사회적 성격장애, 즉 폭발성 사이코패스(Psychopath)일 가능성이 크다는 정신 분석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분석해 본다면 사람은 죄를 짖다보면 양심이 마비가 되어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되며 오히려 죄를 즐기는 속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치 소매치기가 어제 오백만원을 소매치기 했는데 오늘은 일천만원을 소매치기 했다면 그는 결코 더 큰 죄를 지었다고 뉘우치기 보다는 오히려 오늘은 운이 좋았다고 즐거워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죄를 계속하여 짖다보면 결국은 죄 짖는 일을 즐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의 피가 흐르고 있는 모든 인간에게는 원죄로 인한 죄성이 있기 때문이며 계속해서 죄를 짖다보면 양심이 마비되어 버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어떤 사람은 영혼이 순수하고 맑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바늘 끝 하나 들어 갈 수 없을 만큼 마음이 꽉 닫혀 있는 강퍅한 사람도 있습니다.그러므로 양심은 각 사람의 혼의 상태에 따라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어린 아이에게는 양심이 없는 것 같이 보입니다. 양심이 있다 할지라도 양심의 씨앗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따라서 양심은 몸이 자람과 함께 성장하면서 사람마다 다르게 형성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선한 양심이란 어떤 양심을 말하는 것일까요?그것은 인간 내면에 형성된 양심이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형성되었을 때 그 양심은 선한 양심이 될 것입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선이며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악한 양심이란 하나님 뜻에 반하여 형성된 양심입니다.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아는가?그것은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으니 성경이라는 진리의 거울에 비춰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믿는 자가 성령 충만하여 거룩하여지고 온전히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그는 먼저 양심의 소리에 복종해야만 하는 것입니다.양심은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주님의 말씀과 명령에 온전히 순종했는지 불순종했는지를 증거 해 줄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때때로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고 살았지만 구원 받은 후에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을 하게 되면 양심에 심한 가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양심에 가책 받는 일을 절대로 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또한 신자는 항상 양심의 소리를 경청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깊은 영성에 도달 할 수 있는 것입니다.따라서 양심의 소리의 순종하는 자에게는 큰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은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귀 기울려 행동했을 때 성령께서 어떻게 도와 주셨는지 양심에 관한 글 하나를 소개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끼익~

자동차 문을 긁는 소리가 주차장에 가득 찼다.나는 순간 등골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그리고 운전대를 잡고 한참 그렇게 앉아 있었다."설마, 설마. 내가…" 십 년이나 탄 '엑셀' 자동차로 'BMW'의 문에 흠집을 낸 것이다. 그것도 앞문 뒷문 모두.엑셀을 팔아도 수리비를 다 치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차마 내려서 차를 바라볼 자신도 없었다. 한참을 고민했다.새벽 두 시.아무도 없는 주차장.여기서 내가 차를 빼고 냅다 도망가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보아하니 수리비는 수백만 원 이상 나올 것이지만 출강하는 학교 사정으로 월급이 밀린지 삼 개월 째.분명 하늘도 용서하리라는 생각에 차를 빼려는 순간 나는 또 다시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신앙인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가? 한참을 고민하다 종이에 이름과 연락처 아울러 죄송하다는 말을 적었다.그리고 와이퍼에 끼워 두었다.수백만 원이 넘는 청구서가 눈앞에 어른거렸고 나는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고 말았다.

저는 할 도리를 다 했습니다.제발 바람이 불어서 그 종이가 날아가게 해 주세요.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BMW가 가슴을 누르는 꿈을 꾸었고 수리비를 내지 못해 쫓겨 다니는 꿈도 꾸었다.나를 깨운 것은 아내의 목소리였다."여보! 전화!" 하는 아내의 말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어, 누구래?" 떨리는 목소리를 감춰 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이상한 소리만 내고 말았다."당신이 흠집 낸 BMW 주인이래." 전화기 까지 가는 동안 내 머리 속에는 얼마나 많은 생각이 오고 갔던가.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모아둔 돈도 없는데.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할까?아니면 카드로 긁고 12개월 할부로 할까. "여보세요." 내 개미만한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전화 건 사람은 꽤 호탕한 목소리를 냈다."네. 차 주인입니다." 죄송하다는 내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그는 "이민 가려고 했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웬 뚱딴지같은 이민? "지금까지 내 차를 긁어 놓은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호주에서 몇 년 살다 왔는데 한국은 도대체 사람들이 정직하질 못해요.날림공사 때문에 피해도 많이 봤습니다.사실 차 하나만 봐도 그렇습니다.차체가 큰 편이라 그런지 자주 긁히고 백미러도 깨집니다.근데 피해를 주었으면서도 한 명도 미안하다고 얘기한 사람이 없었습니다.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누가 했는지 모른다는 심보겠지요.

이놈의 나라가 싫어서 확 이민이나 가려고 했는데 선생의 메모를 보았습니다.차를 스무 번도 넘게 카센터에 보냈지만 이번처럼 기분 좋게 보낸 적이 없습니다.이민, 고려해봐야겠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참, 차 값은 됐습니다.좋은 하루 되십시오." 그는 한 번 더 호탕한 웃음을 보이더니 전화를 끊었다."여보, 무슨 전화야?" 하는 아내의 말이 그렇게 경쾌하게 들리다니.나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어, 나 때문에 한국에서 오래 오래 살겠대!"
<해와 달 2003년 10월호>

그러면 우리는 선한 양심을 갖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선한 양심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읽은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며 기도하여 성령 충만함을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

믿는 자는 양심의 가책되는 일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선한 양심 속에서만 하나님과 올바른 교제를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오로지 선한 양심만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입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 3:21).

신자의 신령한 상태는 양심에 대하여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 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만일 성도가 양심이 직관적으로 책망하는 소리를 무시 한다면 이미 죄 가운데 있다는 징표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행 23:1).사도 바울처럼 우리 모두는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