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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부키
책소개 : 유쾌한 사회 비평가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자본주의와 철저한 공생 관계를 맺고 있는 긍정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전방위적으로 파헤쳤다. 출간 직후 단박에 미국 아마존 사회 부문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독자들 사이에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긍정주의는 미국의 신사상 운동에서 태동하여 신복음주의 교회 및 기업계와 결합하면서 발전했다. 구조 조정이 일상화된 신자유주의 시대와 맞물려 기업이 선호하는 강력한 신념 체계로 자리를 잡은 긍정주의는 영어권에 이어 중국, 한국, 인도와 같은 성장 국가들로 확산되었다. 긍정은 위기의 징후에 눈감게 만들어 금융 위기를 비롯한 사회적 재앙에 대비하는 힘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실패의 책임을 개인의 긍정성 부족으로 돌림으로써 시장경제의 잔인함을 변호한다.


P.22 : 심리학자들이 각 나라 사람들의 상대적 행복도를 측정한 결과 놀랍게도 미국인들은 긍정성을 자랑스레 내세움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한창 활황일 때조차 행복한 축에 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각국의 행복도에 관한 100건 이상의 자료를 종합 분석한 자료에서 미국인의 행복지수는 23위에 머물러 네덜란드인과 덴마크인, 말레이시아인, 바하마인, 오스트리아인은 물론 음울한 사람들로 알려진 핀란드인보다 순위가 낮았다. 한편 세계 우울증 치료제의 3분의 2가 미국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도 미국인들이 느끼는 고통을 시사해 준다. 


P.68-69 : 긍정적 사고는 분노와 공포라는 실체적 감정을 부정하고 쾌활함의 분칠 아래 묻어 두도록 요구한다. 불평을 듣느니 가짜 쾌활함을 상대하는 것이 나은 만큼 의료 종사자나 환자의 친구들에게는 몹시 편리하다. 하지만 환자 자신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점 발견에 관한 한 연구는 "유방암 환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선의를 갖고 이점을 발견하려 노력하는 것조차 둔감하고 서투르다고 보고, 되풀이해서 반감을 표시했다. 환자들은 그런 노력을 자기에게 지워진 고유한 짐과 과제를 경시하는 불쾌한 시도로 해석했다."고 밝혔다. 2004년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긍정적 사고의 신조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가 나왔다. 암 선고를 받고 이점을 더 많이 자각한 여성들이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정신 기능의 저하를 포함해) 삶의 질이 더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1장 암의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P.70-71 : 심리학자들은 억압된 감정은 그 자체가 해로운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말로 그런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긍정적 사고가 '실패'해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암이 퍼지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럴 때 환자가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충분히 긍정적이지 못했다고, 애초에 암이 생긴 것도 부정적인 태도 탓이었다고 자책하게 된다. 이 지점에 이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충고는 "이미 피폐해진 환자에게 추가적인 부담이 된다."고 종양학 간호사 신시아 리텐버그는 썼다. 뉴욕 슬로안케터링 기념 암센터의 정신과 의사인 지미 홀런드는 암 환자들이 일종의 희생자 비난을 경험한다고 밝혔다.

"10년쯤 전부터, 정신과 육체는 연결되어 있다는 대중적 믿음을 토대로 우리 사회가 환자들에게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부담을 지운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끼게 되었다. 나를 찾아온 많은 환자가 선의를 가진 친구로부터 "암과 관련된 글을 모조리 읽어 보았는데, 네가 암에 걸린 건 네가 암을 원했기 때문이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여기에 더해 환자가 "항상 긍정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암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요. 하지만 너무 힘듭니다. 내가 슬퍼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화를 내면 결국 암세포를 더 빨리 자라게 할 테니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라는 말을 할 때면 나는 더더욱 고통스럽다." 긍정적인 사고에 실패한 암 환자는 제2의 병과 같은 부담을 더 지게 될 수도 있다. -1장 암의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