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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훈련이란 무엇인가? (1)
영적 훈련에 대해 제일 먼저 알아야 할 점은 영적 훈련이 우리를 의롭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적 훈련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저절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영적 훈련이 어마어마한 영적 능력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은혜의 방편’이라고 부른 것을 우리에게 제공할 뿐이다. 그렇다면 영적 훈련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그분의 일을 시작하실 수 있도록 우리를 그분께 드리는 훈련이다. 전통적으로 영적 훈련의 활동에는 기도, 묵상, 금식, 연구, 소박한 생활, 고독, 봉사, 복종, 고백, 상담 등이 포함된다.
이런 훈련의 방법들은 성경 전체에 걸쳐서 이런저런 모양으로 언급된다. 또한 그것들은 기독교 세계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위대한 경건의 대가(大家)들에 의해 발전되어왔다.
훈련에 의한 생활이 습관으로 굳어졌다고 해서 자발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사실, 자발성이 활성화되어 순기능을 발휘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훈련뿐이다.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자유를 즐기기 힘들다.
예를 들면, 피아노를 치는 훈련을 하지 않은 사람은 자유롭게 피아노를 칠 수 없다.
악기 연주는 본능적 습관의 일부가 아니다.
콘서트에 나와서 피아노를 아름답게 연주하는 사람은 자신을
아름다운 음악을 즐길 자유가 있는 것이다.
영적 훈련을 쌓은 사람은 성령 안에서 의(義)와 평강과 희락을 누릴 수 있으며,
그 결과 시시각각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능력과 생명이 있기 때문이요,
또한 그가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시간과 노력을 바쳐 건전한 방법으로 성경을 연구한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자.
어떤 문제가 생겼거나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성경 연구의 훈련을 하지 않았다면,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갖지 못할 것이다. 영적 훈련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때때로 영적 훈련은 힘든 일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300년 전 쟝 삐에르 드 꼬사드(JeanPierre de Caussade)라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영적 훈련을 받은 영혼은 떠다니는 풍선처럼 매 순간의 은혜에 반응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영적 훈련이 무엇인지를 완벽하게 표현해준다.
영적 훈련의 목적
우리는 영적 훈련 자체를 높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영적 훈련은 더 큰 선(善)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것의 목적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변화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함께 걷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4)고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삶, 즉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우리는 사랑, 희락, 평안 같은 성령의 열매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열리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렇게 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행하기를 원한다.
우리의 영적 훈련의 채점표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까지 나는 이 세 가지를 행하였다.
이제는 네 번째 것을 행해야 할 차례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영적 훈련들을 실행함에 있어서 그것들을 자신에게 의무 사항으로 부과하여 자신을 얽어매는 것은 잘못이다.
영적 훈련을 율법주의로 변질시키는 것은 ‘마음은 없이 몸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셈이다.
“나는 어떻게 영적 훈련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라고 묻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만일 내가 경건의 훈련을 성공적으로 만들 방법이 무엇인지를 궁리한다면 나는 경건의 훈련을 잘못된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고 순종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성공적인 영적 훈련은 나의 소관사항이 아니고 그분의 일이다. 나는 그분께 충실하면 된다.
그 다음의 모든 것은 그분이 맡으신다. 그분이 맡으시는 것이 곧 은혜이다.
영적 훈련의 목적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즐거워하기 위함이다.
경건의 훈련은 우울한 의무가 아니다.
우리는 이를 갈면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친구가 되어 그분과 함께 사는 것은 기쁨이다. 그분은 우리가 영성적 삶을 즐기기를 원하시는데, 이 영성적 삶을 가능하게 하고 재미있게 하는 것이 바로 경건의 훈련이다.
당신이 일단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큰 축복을 맛본다면, 이 축복을 또 체험하기 위해서 어떤 어려움들도 감수할 것이다.
이런 축복은 영광이요 천국의 기쁨이다. 물론 영적 훈련을 한다고 해서 항상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즐기기 위해서는 많은 날들을 힘겹게 노력해야 할 때도 있다.
피아노 연주를 즐기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은 세월 동안 단조롭고 힘든 피아노 연습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영적 체험의 열매가 있는 것은 아니라 해도 늘 경건의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면 때가 되어 깊은 영적 체험이라는 열매가 주어질 것이다.
영적 훈련은 힘든 일이지만,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은
그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느헤미야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고 말했다. 기쁨은 힘을 준다.
감정은 훈련을 통해 통제되어야 하지만, 일단 훈련된 감정은 나름대로 자유롭게 본래의 기능을 다해야 한다.
감정의 본래의 기능은 우리에게 활력을 주고, 우리의 일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사람들을 섬길 때 우리는 단지 그들을 향한 감정 때문에 그들을 섬기는 것은 아니다. 만일 감정에만 기초하여 남들을 섬긴다면,‘우리 같은 사람들’만을 섬기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섬기도록 우리를 변화시켜주는 것이 바로 경건의 훈련이다.
우리로 하여금 경건의 훈련을 시작하도록 만들 수 있는 힘이 감정에게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경건의 훈련을 시작하면 감정은 그것을 즐거운 것으로 변한다. 영적 훈련의 목적은 우리에게 습관을 형성시켜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훈련을 받아서 변화될수록, 습관은 제2의 천성이 된다.
일단 습관이 견고하게 형성되면, 영웅적 노력을 하지 않고도 어려운 일들을 전보다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위대한 신학자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은 “그리스도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할렐루야로 가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건의 훈련은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법을 가르쳐준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
영적 생활의 지도자로서 큰 명성을 얻었으며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저술하였다)가 말했듯이
“예수님과 친밀한 우정을 나누는” 법을 가르쳐준다.
예수님과 깊이 교제하는 것이 영적 훈련의 핵심이다.
- 리처드 포스터 , 기독교 교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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