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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처음 본게 정확히 목요일이었는지 금요일이었는지

그 때 귀걸이를 했는지 안했었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그런 시시콜콜한 걸 다 기억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내 생일이나 전화번호를 외우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아요

내가 전화걸 때 처음에 여보세요 하는지 죄송합니다만 그러는지

번호 8자를 적을 때 왼쪽으로 돌리는지 오른쪽으로 돌려쓰는지
지하철 1호선과 4호선 안에서 내 표정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내 모습까지도 기억하는 남자

같이 걷던 한강 인도교의 철조 아치가 6개인지 7개인지

그때 우리를 조용히 따르던 하늘의 달은 초생달인지 보름달인지
우리 동네 목욕탕 정기 휴일이 혹시 첫째 셋째 수요일에 쉬는지
아니면 둘째 넷째 수요일에 쉬는지 그걸 기억할 수 있을까

나를 둘러싼 수많은 모습과 내 마음 속의 숨은 표정까지도

오직 나만의 것으로 이해해주는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내 새끼 손가락엔 매니큐얼 칠했는지 봉숭아물을 들였는지
커피는 설탕 두스푼에 프림 한 스푼인지 설탕 하나에 프림 둘인지

그런 사소한 것까지 다 기억을 한다면 얼마나 피곤할까 생각하겠지만

아주 가끔씩만 내게 일깨워준다면 어때요 매력있지 않아요?
어릴적 동화 보물섬 해적선장 애꾸눈 잭은 안대가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만화 주인공 영심이를 좋아하는 남학생이 안경을 썼는지 안 썼는지

고기집에서 내가 쌈을 먹을 때 쌈장을 바르고 고기 얹는지

아니면 고기부터 얹고 쌈장을 바르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는 날 일깨워 주듯이 볼때마다 새로움을 주는 사람이면
그 어떤 능력보다 소중하지요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지난 겨울에 내가 즐겨끼던 장갑이 보라색인지 분홍색인지

그게 벙어리 장갑인지 손가락 장갑인지 기억할 수 있을까
나를 처음으로 집까지 데려다 준 날 정류장에서 들리던 노래가
목포의 눈물인지 빈대떡 신사인지 혹시 기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