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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의 기원은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천지만물의 주재(主宰)이시며 어떤 경우이든 권위는 궁극적으로 창조주이신 우리 하나님께 있습니다."어거스틴(Augustin)은 하나님은 신앙과 도덕의 궁극의 권위이시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행 17:24)



한 교회를 위임 받은 목사는 그 권위가 부여된 권위든 획득된 권위든 권위를 갖고 있는 것이며 교인들은 그 권위를 존중해야 하는 것입니다.권위란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으로 권세와 위세를 가리키는 말입니다.권위주의의란 권위에 대하여 맹목적으로 복종하거나 권위를 휘둘러 남을 억누르려고 하는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을 말합니다.진정한 권위 앞에는 존경과 순종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권위주의는 억지로 권위를 세우므로 복종하고 싶지 않으나 할 수 없이 마지못해 따르게 됨으로 저항심을 갖게 됩니다.대체적으로 권위주의자는 자기의 연약한 인격이나 부족한 실력을 외형적으로 잘 꾸며서 과시해 보려고 노력합니다.그러므로 목회자는 어떤 경우이든 권위주의는 멀리해야 합니다.

입술로는 만인제사장 운운하지만 현실은 평신도와 목회자로 분리해 놓고 목회자는 마치 구약시대의 대제사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는 교회가 너무나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강단을 2층 3층으로 만들어 놓고 간증을 위해 초빙된 평신도 강사는 2층에 목사만이 3층에 서게 하는 것은 권위주의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교회 안에서 왜 직분의 차이가 있어야 되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교회에서는 무슨 일을 맡아 하던 다 거룩한 직분이며 여기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알맞은 예가 될지는 모르지만 목회자가 겨울에 즐겨 입는 검정색 가운(gown)에 대해서 말씀해 보고자 합니다.목회자들이 겨울에 입는 가운의 색깔을 보면 비성서적인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굳이 구약시대에 대제사장들이 입었던 에봇(ephod)과 같은 가운이 필요했다면 좀 더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만들었어야 했습니다.에봇을 만들었던 색상을 보면 금색 청색 자색 홍색을 사용해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또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에봇을 만들었으되"(출 39:2).따라서 대부분의 목회자가 겨울에 입는 검정색 가운은 중후한 감은 있을지 몰라도 목회자의 가운으로는 어울리는 색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검정색의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애도, 슬픔, 엄숙함을 나타냅니다.이렇게 말하면 편협한 생각이라고 말할지는 몰라도 성경적으로 볼 때 검은색은 어둠의 세력을 나타내는 색깔로 악의 세력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도 대부분의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검은색 가운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검정색은 권위의 상징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권위 그 자체라 말 할 수 있는 법정에서 판사들이 입는 법복의 색깔이 검정색입니다.또한 청와대나 권세 있는 고위직에 있는 고급 공무원들이 타고 다니는 승용차의 색깔 역시 한 결 같이 검정색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따라서 목회자가 겨울철에 입는 검정색 가운은 권위주의의 산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목사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성서에서 목사라는 말은 에베소서 4장 11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엡 4:11). 이 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양치기를 뜻합니다.목회자는 목축업을 주업으로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양을 치며 돌보는 목자 또는 목동에게서 나온 말입니다.사자나 늑대와 같은 맹수로부터 양을 돌보기 위해서는 어떠한 위험과 고통도 감수해야 하는 목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사탄으로부터 보호하며 인도해야 할 지도자가 가져야 할 모습과 비슷하므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할 지도자에게 붙여진 이름입니다.

목회자는 또는 교역자라고도 하며 하는 일은 교회를 중심으로 예배 설교 교육 행정 등의 직능을 맡아 수행합니다.또한 신자들을 심방 상담 위로하며 교육과 예배를 주재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과 교회를 보호하며 육성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목사직은 복음 전도를 위한 사역적인 은사입니다.목회자의 인격이나 목회자가 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일을 대리하는 대리자가 아니라 그가 맡은 일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리자의 사역인 것입니다.특히 목회자의 말과 행위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깨닫고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교회의 지도자로써 그 본연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그 권위가 바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권위는 목회자의 생명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목사가 교회에서 권위를 상실하게 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설교는 목회자가 강단에 서기 전에 이미 70%를 마친 것과 다름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그만큼 목회자가 참된 권위를 갖는 것이 소중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럼 목회자가 참된 권위를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목회자는 먼저 투철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부르심에 응답하는 올바른 신앙관과 가치관을 정립해야 합니다.사도 바울은 자신의 헌신에 대해서 "내가 사도가 된 것은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 아버지 하나님으로 인하여 되었다"(갈 1:1)고 하였습니다.그렇습니다.목회자는 부르신 이의 뜻은 바로 깨달아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하는 것입니다.목회자의 권위는 목회자가 주님을 위해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사랑과 헌신과 섬김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목회자가 참된 권위를 갖기 위해서는; 첫째로 목회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며 주시는 말씀을 올바로 전해야 합니다.



말씀을 바로 전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묵상하며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그리하면 성령께서 올바른 깨달음을 주십니다.깨달음만 주실 뿐 아니라 영력(靈力)을 주셔서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이적과 기적과 표적의 역사도 나타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자신의 사상과 주장과 감정을 이입시켜 말씀을 잘못 전해서는 절대로 아니 되는 것입니다.특히 강단에서 말씀을 전할 때 정당간에 이해관계가 현저하게 들어나는 정치문제에 관여하거나 남을 비방 판단 정죄하는 말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오로지 순수 복음만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이렇게 할 때 교회는 자연스럽게 부흥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목회자는 교인들의 영혼을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눅 10:27).목회자가 십자가 보혈의 사랑을 바로 깨달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할 때 교인들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故) 손 양원 목사님은 애양원 교회에서 1200여명의 한센병(나병) 환자들을 돌볼 때 환부에는 사람의 침이 좋다고 하여 환자들의 환부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냈다는 이야기는 목사님께서 얼마나 뜨겁게 영혼을 사랑했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이러한 헌신과 섬김은 영혼을 사랑한 진정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이분이야 말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한 진정한 목자였던 것입니다.목사님의 이러한 삶의 모습을 보았던 모든 교인들은 자연스럽게 그 분을 존경하게 되었으며 이 존경심은 바로 목회자의 권위가 되어 능력 있는 목회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셋째로 목회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줄 아는 선한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실제로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인류 구원이라는 대명제를 실현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그렇습니다.바른 목회자는 영혼 구원을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기꺼이 버리는 자일 것입니다.넷째로 목회자는 성도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

특히 개척교회 목사들은 성도 위에 제왕처럼 군림하며 교회를 자기 혼자 세운 것처럼 착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교회를 운영하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종종 보고 듣곤 합니다.이런 경우 그 목회자가 은퇴한 후에는 교회가 분열되고 잡음이 그치지 않으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교회는 주님의 피 값으로 세워진 것이며 성도들의 피와 눈물과 땀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주님은 섬김을 받으려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피조물인 인간들을 섬기려 오셨으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고 했습니다.목회자는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섬김의 도를 가르쳐 주신 것처럼 교인들을 섬기는 자세로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목회자는 화평과 덕을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롬 14:19).목회자가 합리적이고 합법적으로 목회의 정도를 걷는다 할지라도 목회자가 고매하고 너그러운 도덕적 품성을 상실하게 되면 진정한 권위가 서지 않습니다.목회를 하는데 있어서 교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설교도 중요하고 교회를 장악하여 올바로 인도해야 하는 조직력 또한 필요하지만 진정한 권위는 강단에서 성도들을 비방하거나 마음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허물을 감싸 안고 덕을 세울 때 목회자의 권위가 바로 서게 되며 교회는 화합하여 자연스럽게 부흥되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목회자는 위선의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마 23:25).목회자는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선한 척 하는 위선은 결코 옳은 것이 아닙니다. 또한 양의 탈을 쓰고 타인을 정죄하는 것은 더더욱 옳은 일이 아닐 것입니다.목회자는 자신의 잘못은 더 큰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약 3:1).야고보서 기자는 선생 되기를 기뻐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선생 된 자로서 잘못하면 더 큰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위선의 탈을 쓰고 고의로 계획해서 범한 죄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목회자는 하나님의 이 무서운 경고를 항상 기억해서 위선의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곱째로 목회자는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를 업신여기지 말아야 됩니다."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잠 14:21).목사는 좋은 차를 타고 오는 부자를 귀히 여기고 가난한자를 무시하고 홀대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세상에서 상처받고 억압당한 가난하고 소외된 힘없는 영혼들이 교회에서 조차 무시당하고 상처 받고 위로 받지 못하며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일일 것입니다.가난한 사람과 소외된 자를 업신여기는 것은 우리 주님을 업신여기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가난한 성도와 소외된 자들이 교회에서 상처 받지 않도록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배려해야 할 것입니다.그러나 현실은 어떠합니까? 나이 먹은 노인들이 교회에 등록하면 일거리만 생겼다고 말하는가 하면 가난한 자를 홀대하고 무시하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여덟째로 권위는 삶의 실증으로 나타나야 합니다.목회자가 스스로 세워나가야 할 권위와 권위 있는 삶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영위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목회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일부 목회자들의 권력욕과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오늘날 심심찮게 매스컴에 오르내리 는 대형교회의 추악상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교회재정 유용 및 횡령, 언어폭력, 섹스 스캔들, 선거 부정행위,원로목사와 담임목사간의 교권 다툼, 담임 목사직 세습, 아들이 없는 경우는 사위에게 세습, 평생 목회를 위한 정년 연장 시도 등 부도덕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일부 사이비 목회자는 교주 노릇까지 하며 두려움 없이 악의 길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청렴한 목회자가 많은 사람들로 부터 존경 받는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인 것입니다.따라서 목회자의 권위는 성경이 말하는 범위 안에서의 권위이어야 합니다.목회자가 목회의 편리함을 위해서 타 교회에서 하니까 우리도 따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은 잘못된 권위를 이입시킬 위험한 일로써 이것이야말로 억지로 세우는 권위일 것입니다.

신도에게는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히 13:17).성도는 때때로 권위에 순복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목회자에게 순종하는 자세이어야 합니다."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주님의 일을 대신하는 목회자에게 순종하는 것은 복을 받는 지름길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도는 성경 말씀 안에서 목회자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신도가 목회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데에는 때때로 용기가 필요합니다."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1).신도가 뒤에서 목회자를 비난하는 것은 교회를 분열시키는 참으로 주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일입니다.그러나 목회자에게 순종하고 복종 한다면 그것은 훌륭한 아량이며 교회와 성도 그리고 개인의 신앙에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운명이라는 말 보다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을 씁니다.신앙인은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만난 이 만남을 상호 유익한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자녀들은 어떤 부모를 만나냐에 따라서 그들의 운명과 신앙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또한 학생은 어떤 스승을 만나냐에 따라 그의 인생이 바꿔지기도 합니다.헬렌 켈러가 그녀의 스승 앤 설리번 메이시(Anne Sullivan Macy)를 만나므로 훌륭한 저술가로 사회사업가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으며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인 또한 어떤 영적 지도자를 만나 그분과 어떤 관계를 가지냐에 따라 성도의 삶은 달라지는 것입니다.어떤 사람은 좋은 영적 지도자를 만나서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므로 신앙이 잘 자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신도는 목회자와의 잘못된 인간관계 때문에 큰 상처를 받고 신앙을 저버린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모름지기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아무리 큰 상처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 믿음을 저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될 것입니다.인간은 그 누구도 절대적인 신뢰의 대상은 아니며 끊임없이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야 할 사랑의 대상인 것입니다.신뢰의 대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하여 주님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물질과 명예와 자신의 유익을 위한 수단으로 예수님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냉철하게 반추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목회자는 사도 바울처럼 당당하게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말 할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 나라에 살고 있다 할지라도 모름지기 목회자는 물질의 유혹을 뿌리치고 청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물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돈을 사랑하게 되면 귀신도 부린다는 돈의 위력에 빠져 재물의 노예로 전락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목회자가 성령 충만하여 모든 일에 본을 보이며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때 신자들은 자연스럽게 목회자를 존경하게 될 것이며 신앙적으로 더욱 성숙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이러한 거룩한 삶을 사는 목회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저항 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힘이 실리게 될 것이며 자연스럽게 위엄과 권위가 세워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따라서 진정한 목회자의 권위는 목회자가 성령 충만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 그 자체일 것입니다.끝으로 목회자는 바울 사도가 말씀했던 것처럼 다음 말씀을 항상 기억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해서 잘했다 칭찬 받고 상급 받는 목회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