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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獨居)에 대하여
때로는 매우 활동적일 필요가 있지만, 때로는 조용히 있을 필요도 있다. 사도 바울은 회심 후 13년 동안 조용히 지내다가 안디옥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추측하건대 그는 광야에서 3년을 보낸 다음 그의 고향 다소에서 약 10년을 보낸 것 같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혼자 지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후 이방인 선교를 위해 매우 활동적으로 일했다. 그에게 독거와 활동이 모두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것들이 모두 필요하다. 사람들은 영적 훈련으로서의 독거 곧 ‘홀로 있음’에 대해 종종 오해한다.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집중하기 위해 혼자 조용히 지내는 것이 독거이다. 

그것은 치열한 생존경쟁의 사회로 다시 뛰어들어 

성공하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한 시도가 아니다. 그것은 치열한 생존경쟁 자체에 대해 초연한 태도를 취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나의 본능적 욕구에서 나를 해방시켜주실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독거의 훈련을 할 때 나는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무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거를 이해하지도, 그것의 가치를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독거의 훈련을 할 때 나는 또한 어떻게든 세상에서 성공해보려는 나의 뿌리 깊은 본능을 무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독거는 나를 다른 사람들과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시킨다.  
 

 

독거는 다시 사람들에게 돌아와서 그들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준다. 예수님도 독거의 훈련을 하셨는데, 이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혼자 계심으로써 그분의 사역을 시작하셨다(마 4:1-11) 열두 제자를 선택하기 전에 광야의 산에서 혼자 온 밤을 지새우셨다(눅 6:12) 5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베푸신 후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다”(마 14:23) 열두 제자가 전도와 치료의 사역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라”(막 6:31)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가장 거룩한 사역, 즉 십자가를 지는 사역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혼자 지내셨다(마 26:36-46) 우리 역시 그분의 모범을 따라야 할 필요가 있다.  

 

 

 

 

현대사회는 워낙 바쁘고 복잡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시간을 내어 혼자 있어야 독거의 훈련이 되고,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한적한 곳으로 가서 수련회나 야영 훈련을 하는 것도 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이다.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서 충분한 독거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공부나 기도를 통해 ‘혼자 있음’의 훈련을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일하신다. 우리는 혼자 조용한 시간을 내어 하나님과 교제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열왕기상 19장 11,12절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어떻게 나타나셨는지를 잘 말해준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이 세미한 소리를 듣는 훈련을 하겠다는 의지가 우리에게 있다면 그분은 세미한 소리를 통해 말씀하신다. 그런데 사실 혼자 있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아주 힘들어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침묵을 좋아하지 않는가? 왜 항상 떠들썩해야 하는가? 왜 항상 TV를 켜놓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역설적으로 독거의 필요성을 깨달을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미디어를 통해서 자꾸 다른 데로 생각을 돌리는 것은 생각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발견하는 것이 두려워서 자꾸 사람들이나 미디어로 향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인은 TV 소리, 다른 사람들의 소리에 속박되어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데,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렇게 한다. 다른 사람들과 너무 오랜 기간 동안 떨어져 있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는 상처받고 고통당하는 이웃에게서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혼자 있는 훈련을 실행하는 목적은 거기에서 힘을 얻은 후 이웃을 위해 봉사하기 위함이다. 독거가 반사회적인 성격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독거의 훈련을 할 때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그분은 우리를 돌보시는 목자이시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길을 잃으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실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들이 나타나서 사람들에게 유익을 준다면, 우리의 독거는 선한 열매를 맺는 균형 잡힌 독거로 평가될 것이다. 
 

 

혼자 있는 훈련을 제대로 하기 위한 단계들은 무엇인가?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어차피 혼자 있게 되는 시간들을 잘 이용하는 것이다. 아침에 다른 식구들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잠에서 깬 사람은 자기의 침대에서 혼자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하루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마시는 모닝커피 시간도 비록 짧지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러시아워 때에 고속도로에서 차량 정체로 인하여 기다릴 때도 역시 혼자 있는 시간이다. 이런 시간에 눈길을 돌려 길가의 꽃과 나무를 바라보는 것도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작은 휴식이다. 식사 전에 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식탁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침묵의 기도를 짧게 드리는 것 또한 참신한 방법이 될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집까지 걸어가는 시간도 나름대로 의미와 기쁨으로 충만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잠깐 밖으로 나가서 조용한 밤을 느껴보라. 이런 작지만 충만한 시간들을 놓쳐버리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이런 시간들을 되찾아야 한다. 이런 조용한 내면의 시간들은 마치 나침반의 바늘처럼 우리의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놓는 역할을 한다. 이것들은 비록 작은 시간이지만 우리의 현재의 의미를 놓치지 않게 해준다.  

 

리처드 포스터 , 기독교 교양